평양냉면.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은 없을 것이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맛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을 정도로 그 차이가 극심하다. 평양냉면의 리뷰에는 그냥저냥 괜찮았다는 느낌의 어중간한 평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한마디로 마니아들을 위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오늘 그 '마니아'들이 사랑하는 성지들 중 가장 유명한 곳의 맛을 한번 보았다. 바로 '우래옥'이다.
영업시간은 11:30~21:00 이며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무이다. 라스트오더 시간은 20:40 이다. 기타 문의 사항은 전화 02-2265-0151을 이용하면 된다. 웨이팅은 심한 편이다. 가게입구에 있는 키오스크를 통해서 웨이팅을 신청해야 하며 캐치테이블 같은 예약 어플은 사용이 불가하다.
주차는 가능하긴한데 발렛파킹을 이용해야 한다. 가격은 3,000원이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길이 협소하면서도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생각보다 험난하다. 그냥 을지로4가 지하철역 4번 출구로 나와서 5분만 걸으면 되니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을 수도 있다. 참고로 필자는 우래옥 주변 노상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는데 10분에 1,500원이라는 정말 아찔한 가격을 지불해야만 했다.. (경차는 50% 할인됨)
대중교통 > 발렛 > 주변 노면 주차장 순으로 추천한다.
본관의 모습이다. 우래옥(又來屋)이라는 이름은 '다시 찾아온 집'이라는 의미로 원래 이름은 '서북관'이었다. 1946년에 개업한 이후 6.25가 발생하여 잠시 피난길에 올라 폐업하였고 휴전 이후 서울로 돌아와서 재개업을 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돌아온 집'이라는 의미로 우래옥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이 가게의 창업자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스승인 김희순 훈장의 손녀라고 한다. 평양시가 있는 북한 평안남도 출신으로, 진정한 북한의 평양냉면의 맛을 볼 수 있는 집으로 그 유명세를 얻었다.
메뉴는 육회, 불고기, 갈비구이 같은 고기요리부터 식사메뉴인 냉면, 온면, 각종 탕류가 있으며 주류는 소주부터 와인까지 다양하다. 메뉴판이 상당히 옛스럽다. 오늘은 평양냉면의 성지에 온 것이니 필자와 지인은 각 각 전통평양냉면과 전통평양비빔냉면을 주문하였다. 가격은 16,000원으로 좀 비싸게 생각 될 수도 있지만 소위 '네임벨류'가 있는 음식점이 다 그런거 아니겠는가..
테이블을 보면 별다른 양념없이 슴슴하게 먹는다는 이미지가 있는 평양냉면이지만 의외로 식초와 겨자가 준비되어 있다. 원래 아무것도 넣지 않는 게 평양냉면을 즐기는 진정한 방법이 아닌가? 했지만 아무래도 기호에 따라서 어느 정도 가미를 하는 것은 일반적인 냉면과 비슷한 모양이다. 식사 후반에 식초와 겨자를 넣고 먹어봤을 때 뭔가 깨달음을 얻었는데, 뒤에 다 설명하겠다.
식사를 주문하면 따뜻한 물 비슷한게 나오는데 당연히 육수겠거니.. 했지만 육수가 아니었다. 뭔가 익숙한 맛인데 함께 간 지인과 토의를 해본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은 '엿기름물' 같다는 것이다. 반찬은 간소하게 겉절이 김치 비슷한 것이 나오는데 기름기가 있어서 먹어보니 참기름향이 살짝 났다. 중식당에서 나오는 짜사이무침에서 시큼한 맛을 덜어내고 고소한 맛을 더한 느낌이다.
조금 기다리니 물냉면이 먼저 나왔다. 위쪽에는 무우가 있는 줄 알았는데 먹어보니 배를 절인 것 같았다. 아래쪽에는 양지로 추정되는 삶은 고기가 있으며 약간의 김치가 올라가 있다. 그리고 논란 많고 호불호가 갈리는 평양냉면 국물의 맛은... 일단 간이 슴슴한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뒷맛에서 희미하게 양지국물맛이 났다. 그리고 냉면이라는 이름치고 육수가 그닥 차가운 것은 아니었다. 그냥 맑은 고기 국물인데 그 고기육수의 향을 아주 집중해서 느껴야 하는 뭔가 정신력을 요구하는 느낌.
다음은 비빔냉면이다. 양념장이 가득 올라가있으며 아래에 육수가 살짝 깔려있는 반비빔면 느낌이다. 참기름이 듬뿍 들어간 느낌이며 고소한 향이 난다. 양념장은 상당히 맵고 자극적으로 보이지만 먹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양념장 안에는 삶은 양지가 들어있으며 물냉면이나 비빔 둘 다 삶은 계란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여담이지만 2층으로 가는 길에 다른 테이블을 관찰해 보니 비빔을 먹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아무래도 평양냉면을 먹으러 와서 비빔냉면을 먹는 것이 돈낭비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비빔냉면은 어디든 비슷할 것이라는 느낌적인 느낌 때문일까..
면은 메밀 함량이 매우 높은 면을 써서 메밀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특징이 있는데 면이 탱탱하면서도 툭툭 잘 끊어진다. 그리고 평양물냉면을 거의 다 먹어갈때 쯤 보통의 냉면을 먹듯이 겨자와 식초를 넣어서 먹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여기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아무것도 넣지 않았을 때는 은은한 양지 국물과 메밀면의 조화가 시너지를 일으키는 매력이 분명 있었는데 식초를 넣자마자 그 유명한 '걸레 빤 물 맛'이 나는 것이다. 평양냉면에서 걸레를 빤 물 맛이 난다는 말은 흔히 평양냉면의 육수 맛을 혹평할 때 자주 나오는 소리다.
아마도 우래옥에 와서 냉면이 나오자마자 익숙한 듯 식초와 겨자를 한바퀴씩 두르고 먹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우래옥에 와서 냉면을 먹을 때 식초와 겨자는 아예 넣지 않는 것을 강력 추천하며 산미를 원한다면 정말 딱 한 방울 정도만 넣는 것이 좋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평양냉면의 맛이 너무 슴슴하다면 반찬으로 나오는 참기름 겉절이 무침을 적극적으로 함께 섭취하자. 식초와 겨자를 타는 것보다 10배는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양념 범벅이라 다른 일반적인 비빔냉면과 비슷할 것이라 예상되던 우래옥의 평양비빔냉면은 그 양념맛 마저도 슴슴했지만 평양물냉면보다는 훨씬 자극적인 맛이긴 했다. 평소 비빔냉면이 너무 자극적이라서 싫었던 분들은 오히려 좋아할 만한 맛이다. 참기름 향과 메밀의 향이 적절히 있어서 훨씬 친숙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정제된 당류가 내는 적나라한 단맛이 없기 때문에 어른들이 좋아할 것 같은 맛.
참고로 우래옥의 비빔냉면 또한 식초와 겨자를 넣지 않고 먹는 것을 아주 강력하게 추천한다. 여기에 겨자를 넣는 순간 그대로 동네 냉삼집 비빔냉면화 되버리기 때문에 진짜로 돈이 아까워질 것이다. 우래옥은 함께 제공되는 겉절이 무침만이 유일하게 허락되는 감미임을 잊지 말자.
이상으로 우래옥의 평양냉면에 대해서 포스팅 해보았다. 평양냉면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유의 오묘한 느낌 때문에 다시 찾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매력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필자도, 필자와 함께 간 지인도 평양냉면 '마니아' 까지는 못될 것 같다.. 결국 동네에 돌아와서 다데기 가득 넣은 진한 순대국밥에 소주 한잔 하며 이거야! 를 외치는 우리. 슴슴함 속에서 중독에 가까운 감각을 느끼기에는 나는 그저 범부(凡夫)이기 때문일지도..
오늘의 포스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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